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.25 전쟁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'''6·25 전쟁'''은 [[1950년]] [[6월 25일]] [[일요일]] 새벽 4시경 [[조선인민군|북한군]]이 암호명 '[[폭풍 작전|폭풍 224]]'라는 사전 계획에 따라 [[삼팔선|북위 38도선]] 전역에 걸쳐 [[대한민국]]을 [[선전포고]] 없이 [[침략|기습 남침]]하여[* 간혹 북침으로 헷갈리는 사람들도 있으나, '남쪽으로 쳐들어온 것'임으로 남침이 맞다.] 발발한 전쟁이다. 교전이 이어진 건 [[1953년]] [[7월 27일]] [[정전 협정(6.25 전쟁)|정전 협정]]이 체결되기까지 사실상 3년 1개월(1,129일)간이며, 현재까지 명목상으로는 [age(1950-06-25)]년간 끝나지 않은 [[전쟁]]이다. [[이오시프 스탈린]]이 김일성의 남침을 역이용해, 극동아시아의 미소 냉전 사이에서 승기를 잡으려 한 의도가 있어 [[대리전]] 양상을 띠기도 하는데[* 김영호, 《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》, [[성신여자대학교]] 출판부, 2006년] 때문에 6·25 전쟁은 전후 [[냉전]]의 시작을 대표하는 사건들 중 하나로 평가된다. 6·25 전쟁에서 각각 통일에 실패한 [[대한민국]]과 [[북한]]은 이후 [[한반도]]의 정통 국가로서의 정통성을 걸고 대립하게 되었고, 이는 국가 운영과 국민 여론 및 의식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. [[일제강점기]]에 이어 연속된 한국의 암흑기를 연 사건인 이 전쟁은 오늘날까지 한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, 전쟁으로 굳어진 각 [[국체|체제]](體制)와 상호간 대치 상태는 정전 70년이 지난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. 6·25 전쟁의 평화협정(종전 및 강화 조약)은 아직 체결되지 않았으며, [[남북통일]]이 아직도 안됐기 때문에 따라서 명목상으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지만, 현재 남북 양측의 국민들에게는 전쟁 중이라는 인식은 드물다. 법적으로 볼 때 [[대법원]]의 판례는 지금이 '전시'인지 '평시'인지 명확하게 입장을 내린 적이 없으며 사안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. [[대한민국 국회|국회]] 또한 그러한데,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과 남북 관계의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